이중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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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무제

공동구매 목표금액

52,000,000원

공동구매 달성액

52,000,000원

공동구매 진행률

100 %




민족의 화가, 이중섭



<공동구매가 종료되었습니다>




이중섭무제(Double sided Drawing), 종이에 연필,채색,  11.5 x 15.1 cm






"이 소가 우리들을 해방시켰고, 아이들은 장차의 우리나라다."


- 이중섭 -





2018년 11월 아트앤가이드에서 공동구매를 진행하는 이중섭의 ‘무제’는 양면화라는 이중섭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그가 가장 사랑했던 소와 아이를 각각 한 면씩 표현한 작품입니다. 2016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처음 소개된 작품으로, 11.5☓15.1cm의 종이에 연필과 채색으로 작업하였습니다. 앞면의 소는 작가 특유의 거칠고 역동적인 모습과는 달리 간결한 선으로 정적이면서도 해학적으로 표현하였고, 뒷면은 이중섭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다수의 아이들이 아닌 한 명을 주목하여 표현한 점에서 특별함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연필을 문질러 푹신한 느낌을 만들어 드로잉을 하고 바탕과 안료가 서로 뒤섞이도록 표현함으로써 종이와 일체감을 준 작품입니다.













"어디까지나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모든 것을 전 세계에 올바르고 당당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오.

나는 한국이 낳은 정직한 화공이라오."


–이중섭, 부인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이중섭에게 소는 역경 속에서도 인내와 끈기로 묵묵히 제 갈 길을 찾아가는 선량하고 강인한 동물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소를 관찰하다가 소 주인에게 고발당한 일화가 있을 정도로 그는 소를 사랑하고 잘 알고 있었으며, 소라는 대상에 자신을 투사하였습니다.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여 일하고 모든 것을 다 주고 떠나는 소에게서 이중섭은 한국인의 삶을 떠올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중섭이 몇 년 동안 가족과 헤어져 있을 때 두 아들과 함께 노니는 자신의 모습을 무수히 그렸던 점에서 꿈과 이상을 그의 그림으로 대체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중섭 스스로가 정직한 화공이라고 표현했듯이 이렇듯 그의 솔직한 작품에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작품세계


이중섭은 일본 문화학원에 진학, 입체파의 영향을 받아 이지적인 선의 조형과 색채를 구사하였고, 고구려 고분벽화의 활달한 필력과 예리한 선묘를 받아들여 동양문화의 미를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은지화, 편지화, 삽화 및 스케치 등을 포함하는 드로잉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이중섭은 경제적 궁핍 속에서도 작품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이양담배 포장지인 은박지나 버려진 작은 종이 쪼가리에도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후에는 가난함이나 재료의 빈곤 때문이 아닌 새로운 매체에 대한 기법적 관심이 늘어나면서 연필, 송곳, 못, 심지어 손톱까지 이용하여 실험적인 작업을 하면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펼쳤습니다.







작가의 생애





“중섭은 참으로 놀랍게도 그 참혹 속에서 그림을 그려서 남겼다. 판잣집 골방에서 시루의 콩나물처럼 끼어 살면서도 그렸고, 부두에서 짐을 부리다 쉬는 참에도 그렸고, 다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고, 대포집 목로주점에서도 그렸다.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으니 합판이나 맨 종이, 담뱃갑 은지에다 그렸고, 물감과 붓이 없으니 연필이나 못으로 그렸고, 잘 곳과 먹을 곳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슬퍼도 그렸고, 부산, 제주도, 통영, 진주, 대구, 서울 등을 표량 전전하면서도 그저 그리고 또 그렸다.”



- 구상(시인), 「중섭의 인품과 예술」, 『이중섭 1916-1956』, 중앙일보사, 1986, p. 198







이중섭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미군정의 시기, 좌우익의 대립 등 시련의 시기를 모두 겪은 ‘비운의 천재화가’ 입니다. 모든 세월을 가난과 좌절 속에서 보냈지만, 그럼에도 그의 작품은 가족과 조국에 대한 사랑과 의지가 충만한 걸작이었습니다. 1945년 원산에서 일본인 여성 야마모토와 결혼하여 사이에 2남을 두었고, 1946년 원산사범학교에 미술교사로 재직하기도 하였습니다. 북한 땅이 공산 치하가 되자 창작활동에 많은 제한을 받았고, 친구인 시인 구상의 시집에 표지화를 그리면서 공산당으로부터 비판을 받았습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유엔군이 북진하면서 원산을 탈출하였고 이 과정에서 부인과 두 아들은 일본 동경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1953년 일본에 가서 가족들과 짧은 시간 재회하고 남은 삶을 가족에 대한 그리움 속에 살았습니다. 작고하기 전까지 강박관념처럼 그의 가족을 작품 속에 집요하게 등장시킨 것을 보면 부인과 두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끊임없는 생활고와 사랑했던 가족과의 이별로 건강과 정신은 피폐해졌고, 결국 이중섭은 정신분열증에 거식증, 영양실조까지 겹쳐 1956년 9월 6일 간암으로 서대문적십자병원에서 외롭고 고단한 생애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작품보증서 및 감정서




본 작품은 서울옥션에서 낙찰된 이후로 일부 보수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목표 보유기간: 1년

목표 수익률(IRR): 보유기간 내 15%


회사는 공동구매자로부터 작품 별로 관리 및 판매에 관한 권한을 위임받아 목표 보유기간 내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는 경우 작품의 판매를 진행하며, 

목표 보유기간 내 목표 수익률 달성이 어려운 경우 공동소유권자의 동의를 얻어 보유기간 연장 및 즉시 판매를 진행하게 됩니다.










1. 작품확인서













- 공동소유권 1개마다 작품확인서 1장을 제공

- 초고해상도이미지를 최고급 용지에 특수인쇄

- 개인적인 감상 및 인테리어 목적으로 사용

- 액자 주문제작 가능 (비용별도 2만5천원)

- 회사에 반납하는 경우 :  a. 공동소유권 거래시 b. 원작품 판매시

 




2. 프라이빗 라운지 이용






동반 1인 이용가능


프라이빗 라운지 운영시간

-  월화수: 11시 ~ 6시

- 목금: 11시 ~ 8시

- 주말, 공휴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