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새와 달(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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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새와 달(1961)

공동구매 목표금액

68,000,000원

공동구매 달성액

68,000,000원

공동구매 진행률

100 %




국내에서 작품가격이 가장 높은 작가, 김환기



<공동구매가 종료되었습니다>


김환기, 새와달,  1961, 종이에 과슈, 31.5 x 46.5 cm





“오늘은 어두워서 일이 안돼요. 눈 뒤에 비가 오나봐.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시간, 약주나 받아놓고 둘이서 한잔하고 싶은 마음 간절해요.

조국이란 게, 고향이란 게 부모 핏줄 이상 가나 봐. 그- 조국이 한시 안 그리울 때가 없어. 그리고 우리집이-. 난 이상해.

서교동 우리집이 난 어떻게나 그리운지 모르겠어.해는 저물어가고 소위 연말이라는 우울이 가득하겠지-.

(중략)

내 그림 참 좋아요. 내 예술과 서울과는 분리할 수 없을 것 같애.

저 정리된 단순한 구도, 저 미묘한 푸른 빛깔.

이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세계이며, 일이야.

 

어두워졌어요.”

 

-김환기, 1963년 12월 12일




2019년 2월 아트앤가이드에서 공동구매를 진행하는 김환기 화백의 '새와 달'은 그가 가장 사랑하는 모티브인 새, 산, 달, 그름이 화면 가득 모두 표현되어 있어 특별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이려면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이란 강렬한 민족의 노래인 것 같다"는 그의 말처럼 새, 산, 달, 구름 등과 같이 우리 자연과 전통적 본질을 대변하는 소재를 화면에 담아내어 한국적인 정서로 녹여내고자 하였습니다. 김환기 화백의 작품에서 꾸준히 등장한 이 모티브들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 파리 시대(1955-1959)에 더욱 심화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귀국 후 서울시대에 (1959-1963)에 김환기 화백의 작품 모티브는 그의 독자적인 방법으로 재해석하여 더욱 표현이 절제되고, 화면 전체적으로 간결해진 색채와 원색적 색면 구성이 두드러지게 됩니다. 

 


이번 공동구매 작품 ‘새와 달’에는 우측 하단에 있는 두 마리 새가 세부적인 묘사가 생략되어 더욱 단순화된 형태를 드러내고 있으며, 좌측 상단에 달과 구름, 중앙부를 잇는 산도 오로지 선만을 사용하여 표현함으로써 절제된 조형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전까지 지속되던 구상의 표현이 점차 희미해지면서 구상과 추상,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김환기 화백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참고도판1) 산월(1961), 종이에 과슈, 32.5 x 47.0 cm




김환기 화백의 서울시대는 1959년 파리에서 귀국, 1963년까지 서울에 거주하면서 작품활동을 한 시기를 말합니다. 이 시기 그는 홍익대학교 교수, 미술협회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매년 개인전을 개최하였습니다. 특히, 유화 작업 외에도 과슈화를 많이 그렸는데, 그가 남긴 태반의 과슈 작품이 이 때 그려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번 작품인 1961년 작 ‘새와 달’은 31.5x47.0cm사이즈로, 지금까지 공개된 동일 연대 과슈화 중 가장 큰 사이즈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참고도판1) 동일 연대, 같은 종이에 그려진 ‘산월’은 2015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6천만원에 낙찰된 것을 고려하면 2월 공동구매 작품‘새와 달’은 가격적인 면에서 아주 매력적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생애



김환기 화백에게 있어 아내 김향안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녀의 본명은 본래 변동림으로, 오빠의 소개로 만난 천재 시인 이상의 부인이었습니다. 1936년 이상과 결혼하였으나, 넉달 후 이상 시인은 <오감도>와 <날개>를 발표한 뒤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변동림 또한 일본에 따라가기 위해 준비하던 중 이상 시인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일본으로 가게 됩니다. 당시 몹시 위독했던 이상 시인은 1937년 폐결핵으로 숨져 둘의 짧은 결혼 생활은 안타깝게 끝나게 됩니다. 그녀의 나이 19살, 고통과 상실감은 말로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났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후 무명 작가 김환기 화백을 소개받았으나, 이혼 경력이 있는데다 딸이 셋이나 있었기에 변동림의 부모는 김환기 화백과의 결혼을 크게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나 변동림은 '사랑은 믿음이고, 내가 낳아야만 자식인가'라며 1944년 김환기 화백과 재혼했고, 가족과의 연을 끊으며 남편의 성과 그의 아호를 따 김향안으로 개명하게 됩니다. 이후 김환기 화백과 김향안 여사는 남부럽지 않은 금슬을 자랑하며 결혼 생활을 이어가게 됩니다. 





“아내는 내가 술을 마시든 게으름을 피우든 아무 소리가 없다. 돈을 못 벌어오는 데도 아무 소리가 없다. 먹을 것이 있는 없든 항상 명랑하고 깨끗하다.. 가다가 세상이 귀찮고 그림을 못 그릴 때면 나는 부지중 아내에게 신경질을 부린다. 그럴때면 찻값을 주어 내보내든지 술을 사들고 와서 한잔 권할 때도 있다.”


-김환기





어느 날, 김향안 여사와 김환기 화백은 파리로 갈 것을 약속하였고, 여사는 프랑스어책을 사서 혼자 공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프랑스어 공부는 한국전쟁이 일어나 부산으로 피난 갔을 때도 이어질 만큼 그녀의 열정은 대단하였습니다. 1953년 한국 전쟁이 끝난 후, 3년 만에 서울에 돌아온 어느 날, “도대체 내 예술이 세계 수준으로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 하며 마음 아파하고 있는 김환기 화백을 보고 김향안 여사는 “내가 먼저 나가볼게.” 하며2년 뒤1955년 혼자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미술을 알고 예술을 알아야 남편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김향안 여사는 프랑스어뿐만 아니라 미술공부에도 전념하였고, 직접 파리의 화랑가를 돌며 남편의 전시회를 준비하고, 1년 뒤 김환기 화백이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전시 준비를 끝내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녀는 프랑스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데다가 생활에도 어두운 김환기 화백 곁에서 그의 입과 귀가 되어주고 일상을 돌보았으며, 무엇보다도 예술의 세계를 함께 고민하고 길을 만들어가는 동반자가 되어주었습니다




“아무것도 맛있는 것이 없다. 너는 정말 죽은 것일까.

55년에, 또 64년에 나는 혼자 혼자를 만나러 오던 길.

신나게 비행기를 탔었는데 인생이 모두 거짓말 같다.

사람 하나 사라졌을 뿐인데 우주가 텅 빈 것 같았다.”

 

-김향안의 일기




그녀는 김환기 화백이 귀천한 뒤, 1978년 환기재단을 설립하고, 1994년 서울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설립하였습니다. 1965년1월 17일, 김환기 화백이 재미난 생각이 떠올랐다며 일기장에 앞으로의 계획(서울 서교동에 있는 집의 빈터에 4층짜리 집을 짓고 두 층은 가족이 쓰고, 두 층은 사설 미술관을 하고 싶다는)을 적어두었던 그의 바람을 이루었습니다. 별세하기 전까지 김환기 화백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데 일생을 바쳤고 남편의 영혼과 늘 함께하였습니다. 2004년 김향안 여사는 남편과 함께 살던 뉴욕에서 눈을 감았고, 남편 김환기의 묘소 옆에 안장되어 영원한 사랑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작품 보증서





목표 보유기간: 2년

목표 수익률(IRR): 보유기간 내 20%



회사는 공동구매자로부터 작품 별로 관리 및 판매에 관한 권한을 위임받아 목표 보유기간 내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는 경우 작품의 판매를 진행하며, 

목표 보유기간 내 목표 수익률 달성이 어려운 경우 공동소유권자의 동의를 얻어 보유기간 연장 및 즉시 판매를 진행하게 됩니다.








1. 작품확인서






환기미술관으로부터 저작권 사용 승인을 받아 제작

- 공동소유권 1개마다 작품확인서 1장을 제공

- 초고해상도이미지를 최고급 용지에 특수인쇄

- 개인적인 감상 및 인테리어 목적으로 사용

- 액자 주문제작 가능 (비용별도 2만5천원)

- 회사에 반납하는 경우 :  a. 공동소유권 거래시 b. 원작품 판매시

 



2. 프라이빗 라운지 이용




동반 1인 이용가능

프라이빗 라운지 운영시간

-  월화수: 11시 ~ 6시

- 목금: 11시 ~ 8시

- 주말, 공휴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