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국, 산(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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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 산(1979)

공동구매 목표금액

84,000,000원

공동구매 달성액

84,000,000원

공동구매 진행률

100 %


한국적 추상 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 공동구매가 종료되었습니다 >




유영국, 산(1979), 캔버스에 유채, 45.5 x 53.0cm





“내 그림은 주로 ‘산’이라는 제목이 많은데, 그것은 산이 너무 많은 고장에서 자란 탓일게다. 

‘숲’이라는 그림도 내가 어렸을 때 마음 앞에 놀러 다니던 숲이 생각나서 그린 것이다…

항상 나는 내가 잘 알고, 또 언제든지 달려 갈 수 있는 곳에서 느낀 것을 소재로 하여 즐겨 그림을 그린다. “  


–유영국


유영국 화백은 한평생 산을 그렸습니다. 그는 우리 추상미술의 선구자였지만, 대상과 절연돼 추상적인 표현적 산이 아닌 구체적인 대상에서 시작해 단순화 작업을 통해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의 산을 그렸습니다. 4월 공동구매 작품 유영국 화백의 <산>을 표현한 기하학적인 삼각형의 형태가 다소 순화되어 둥글게 묘사되었고, 녹색, 청색 등의 색감이 주를 이뤄 산이라는 대상에 대한 그의 꾸밈 없고 순수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숲의 상단에는 일부 마티에르를 사용하여 마치 봄산에 벚꽃이 가득 핀 듯한, 숲의 울창한 나무가 햇볕에 반짝이는 듯한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자연의 생명력과 에너지를 화폭 가득 담았습니다.


유영국 화백에게 자연은 그의 고향 풍경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됩니다. 일본 유학 시절 초기 비구상 작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작품에서 산을 비롯한 자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닌 그의 그리움과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그의 마음 속에 떠오른 자연이었습니다. 특히 1960년대 말부터 그의 그림에는 ‘산(山)’이라는 모티브가 자주 등장하게 되는데, 한국인이 지니고 있는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과 조선시대 산수화의 개념을 그 안에 담으면서 작가 고유의 예술세계를 확립하게 됩니다. 60여년 가까운 세월을 산이라는 대상을 관찰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묘하게 변화하는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가진 산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 냄으로써 그 산을 바라보면서 작가 자신이 느낀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을 남아냅니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그의 말처럼 깊은 산 속 어딘가에서 한가득 자연의 정기를 받고 그 안에 동화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유영국 화백의 <산>을 통해 바쁜 삶 속에 잊고 살아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금새 지나가버려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는 봄의 향취를 한껏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작품 세계




“… 우리 나라의 추상주의 화가는 김환기와 유영국, 이규상이다.

물론 이들도 <자유전>의 동인이었다.

그 중에서도 철저한 우리 나라 추상주의 화가는 유영국이다.”




 1930년대 국내에서 가장 실험적인 추상미술을 시도한 유영국 화백은 우리 현대추상미술의 토대를 마련한 작가입니다. 일관성 있게 추상미술만을 그려온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한국적인 자연관을 바탕으로 한 회화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격한 구성주의적 패턴 속에서 자연의 이미지를 간결하면서도 명쾌한 형태로 추상화하여 보여줌으로써 자연 그대로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서 그린 그만의 자연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영국 화백의 작품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보면 그의 작품 세계가 일관되면서도 미묘하게 변화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0년대 후반 - 40년대 초 ‘절대주의적 추상시기’: 일본 문화학원 유학시절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에 가담하면서 엄격하고 기하학적 구성에 의한 순수 추상을 지향하며 화려한 색채를 배제하였습니다.


40년대 후반 - 50년대 후반 ’구상주의 시기’: 이전의 딱딱한 물질적 요소가 사라지고, 본격적으로 자연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해방 이후 자연에서 생활하던 그의 삶이 고스란히 작업에 투영되었는데 나이프를 이용하여 산, 바다 등의 자연을 독특한 질감으로 묘사하였습니다. 


50년대 후반 - 60년대 후반 ‘추상표현주의 시기’: 형태를 구분 짓는 윤곽선의 경계가 사라지고, 강한 원색의 색채와 함께 두터운 마티에르의 다양화된 추상 이미지를 선보였습니다. 두터운 색층, 거친 질감, 강인한 빛과 선, 면이 어울려 화면을 형성함으로써 시각적인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60년대 후반 - 70년대 초 ‘기하학적 구성시기’: 원이나 삼각형 기본 조형 형태의 패턴을 반복하여 바둑판과 같은 격자의 선들을 통해 정돈되고 안정된 느낌을 자아냅니다.


70년대 초 - 70년대 후반 ‘평면화 시기’: 기존의 다소 규칙적인 패턴의 형태가 주는 긴장과 엄격함에서 벗어나 마치 작가의 여유를 반영한 듯 경계가 허물어지고 한층 부드러운 화면이 등장하였습니다. 일부 산의 음영이 표현되기도 하고 오버랩 되며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친근한 감성을 전달합니다.


70년대 후반 - 2002년 ‘단순화 시기’: 이 시기 그의 작품은 더욱 명쾌해진 색감 대비와 완숙한 표현 기법, 화면 구성으로 유영국 화백 만의 서정성을 느끼게 해 줍니다. Y자 형의 하얀 나무가 자주 등장하고, 하얀 산의 주름, 기호와 같은 도형의 나열, 완만한 곡선 등을 통해 표현은 보다 단순해지면서도 세련된 장식미가 돋보입니다.








작가 생애


일제강점기인 1916년 강원도 울진에서 태어난 유영국 화백은 시대적 상황에 부딪혀 고된 삶을 살았던 다른 작가들에 비하면 비교적 순탄한 삶을 영위하였습니다. 


울진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학구열이 높은 부모님의 영향으로 서울로 상경하여 경성 제2 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고 일본식 규율에 얽매인 교육방식이 맞지 않았던 그는 1935년 19세의 나이에 동경 문화학원에 유학하면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미술을 선택한 계기에 대하여, “간섭이 없어 미술을 했어. 간섭받는 것이 싫어 일본 상선 학교에 가서 외항선을 탈 까도 생각했었지. 그런데 배를 타면 선장이 있어 내 멋대로 할 수가 없잖아. 그래서 미술을 했어.” 라고 말할 정도로 미술에 대한 식견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술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습니다.


1930년대 일본 화단은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세력의 아카데미즘과 함께 서구의 문물이 물밀 듯 쏟아져 들어와 서구화와 민주화가 진행되던 시기였는데, 유영국 화백은 가장 전위적인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미술가협회전에서 주로 활동하였습니다.


1940년대에 들면서 일본의 군국주의적 문화 정책으로 자유주의적 전위활동이 금지되었고, 1942년 6회 자유전을 마지막으로 일본에서의 그의 활동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1943년, 귀국한 유영국 화백은 고향인 울진으로 돌아와 가업을 이어받아 어부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김기순 여사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1947년 서울대학교 예술학부 미술과가 생기면서 교수로 초빙되어 교직생활을 하며 동시에 작품 활동도 재개하게 됩니다. 그를 교수로 초빙한 사람은 바로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였던 김환기 화백으로, 이 둘은 일본 유학 시절 자유미술가협회에 참여하며 두터운 정을 쌓아왔습니다. 윤영국 화백이 언젠가 말하기를, 만약 김환기 화백이 나를 서울로 부르지 않았더라면 나는 영영 화가의 길로 돌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라며 김환기 화백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였습니다. 이후 유영국 화백은 김환기, 이규상과 함께 ‘신사실파’라는 그룹을 결성해 작품 활동을 이어갔으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추상 화풍을 선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1957년에는 모던아트협회를 결성하여, 새로운 미술을 지향하는 예술가들과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추상 작품을 발표하며 한국 현대 미술을 선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1970년대 후반 유영국 화백은 건강이 악화되어 몇 번의 수술을 하게 되고 회복을 위해 햇볕이 잘 들고 나무가 많이 보이는 곳에 위치한 등촌동으로 거처를 옮기게 됩니다. 그 탓인지 이 시절 유영국 화백의 작품엔 나무들이 그림의 주 소재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1979년에는 6.25전쟁의 피해로 인해 손실되어 재제작한 작품을 포함하여 그의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총 109점의 작품들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하게 됩니다. 회고전을 마친 뒤 나빠진 건강상태에도 불구하고 작업에 계속 몰두하여 1980년 현대 화랑에서 전시를 하였고 이후 심장박동기를 달고 작업을 지속합니다.

유영국 화백은 한국을 대표하는 추상미술의 선구자로서 한국 근현대미술에 추상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고 발전시켰습니다. 제 2고보를 채 마치기도 전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한국인들이 많이 다니던 유명 미술학교가 아닌 문화학원을 택하고, 작업을 위해 학교를 그만둔 점 등 남들과는 다른 자유롭고 대담한 선택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고 험난한 시대를 살면서도 그의 작품은 항상 순수하게 아름답고 조화로웠습니다. 지금의 한국 추상미술이 이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유영국 화백, 그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월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어떤 시대고 간에 꼭 있을만한 사람을 반드시 심어놓고 지나갑니다. 그 시대 그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역사는 빠뜨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중략) 선생님의 빈소에서 그분의 영정을 바라보는데 문득 ‘아, 한 시대가 마감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 2002년 유영국의 빈소를 찾은 조각가 최종태의 편지 중에서(미술세계 Vol.217, 2002, P.217)




작품 감정서



목표 보유기간: 2년
목표 수익률(IRR): 보유기간 내 20%


회사는 공동구매자로부터 작품 별로 관리 및 판매에 관한 권한을 위임받아 목표 보유기간 내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는 경우 작품의 판매를 진행하며, 

목표 보유기간 내 목표 수익률 달성이 어려운 경우 공동소유권자의 동의를 얻어 보유기간 연장 및 즉시 판매를 진행하게 됩니다.





1. 작품확인서




- 공동소유권 1개마다 작품확인서 1장을 제공

- 초고해상도이미지를 최고급 용지에 특수인쇄

- 개인적인 감상 및 인테리어 목적으로 사용

- 액자 주문제작 가능 (비용별도 2만5천원)

- 회사에 반납하는 경우 :  a. 공동소유권 거래시 b. 원작품 판매시

 




2. 프라이빗 라운지 이용




동반 1인 이용가능


프라이빗 라운지 운영시간

-  월화수: 11시 ~ 6시

- 목금: 11시 ~ 8시

- 주말, 공휴일 휴무